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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셰프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앤서니 보데인의 일생
2019-05-27 12:05:44
이지나
▲앤서니 보데인은 음식에 대한 열정을 펼치며 이름을 널리 알렸고, 유명 셰프 겸 쇼 호스트로 자리매김했다(사진=ⓒ셔터스톡)

[이지 라이프 투데이=이지나 기자] 앤서니 보데인은 전 세계 각국 진미의 매력을 탐구한 유명 셰프이자 쇼 호스트다. 뉴욕 출신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 유명 조리전문학교인 CIA를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셰프로 일한 앤서니 보데인은 2016년 5월 베트남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하노이 한 식당에서 6달러짜리 쌀국수를 함께 먹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앤서니 보데인은 1956년 뉴욕에서 콜롬비아 레코드 음반 제작자 아버지와 뉴욕타임스 카피 에디터 어머니 아래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 계신 조부모 집을 방문하면서 음식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십 대 시절에는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기도 했는데, 열의 넘치는 태도로 인정을 받으며 튀김 담당 자리까지 올라갔다. 당시의 감상에 대해 보데인은 비즈니스인사이더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승진해서 감자튀김을 튀기던 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이후 바사르대학에 진학했지만 2년 만에 뛰쳐나왔고, 프로빈스타운에서 계속 일하며 헤로인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처음 마약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기사에 따르면 보데인은 20대의 자신을 '완전히 쓰레기'였다고 묘사한다. "이기적이고 절제력이 없으며 마약에 절어 있는 시끄럽고 어리석은데다 무신경한, 절대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초대받은 집에 가서 약장을 털어대는 놈이었다."

 

요리인으로 성장하다

그러나 보데인은 포기하지 않고 요리 학교에 진학했다. 1978년 미국 CIA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요리사로 취직했지만, 곧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데인은 급하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보다 기초를 닦는 위치를 차근차근 거치는 것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 뉴스위크의 기사에 따르면 보데인은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제일 낮은 자리에 들어가 코를 맷돌에 갈아대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맨해튼의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여러 종류의 일을 하다가 1998년 42세의 나이로 브라세리 레 알(Brasserie Les Halles)'의 수석 주방장으로 취직한다.

그리고 저서 집필에 열중했다. 먼저 '키친 컨피덴셜'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여행 채널의 '노 레저베이션'(2005~2012), '레이오버'(2011~2013), '파트 언노운'(2013~2018) 등 여러 쇼에 출연하며 2013년에는 에미상과 피바디상을 수상했다.

쇼 출연 외에도 브라보 채널의 '톱셰프'와 ABC 방송국의 '테이스트' 등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소설 세 권, 그래픽 노블 두 권, 장티푸스 메리 전기 등을 집필했다. 

보데인의 재정 상태

▲앤서니 보데인의 순자산을 과대평가하던 대중은 고작 12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사진=ⓒ셔터스톡)

보데인은 어린 시절 마약 중독으로 힘들어 한 것 외에도 40대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건강보험이 없었던 것은 물론 세금과 집세도 제때 낼 수 없었다. 44세에는 오직 저축 계좌만 개설할 수 있는 상태였다.

매시드의 기사에 따르면 후에 보데인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전 자산이 12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중은 충격을 받았다. 다들 보데인의 자산이 1,600만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데인은 매시드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재정 상태에 대한 기사를 보면 거의 10배 가까이 과장되어 있다. 아마 다들 내가 실제보다 훨씬 현명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데인의 텔레비전 쇼 관계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쇼 제작비를 걱정하면서 제작진과 같은 차를 타고 짐을 다 넣기 힘들 정도로 허름하고 작은 방에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사생활에 대해

보데인은 1985년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친구 낸시 푸트코스키와 결혼했지만, 20년 후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이후 2007년 MMA 선수 옥타비아 버시아와 결혼하고 같은 해 딸 아리안을 얻었다. 보데인은 2016년 비즈니스인사이더의 리치 펠로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생기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정말 절제된 표현이다. 더 이상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하거나 아끼거나 우선하지 않게 된다. 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로 바뀌는 것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순간이다."

이후 2016년에 옥타비아와 결별하고 이탈리아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높은 인기

보데인은 쇼 촬영을 위해 여행할 때 언제나 현지인들과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로 교류했다. 다들 보데인은 꾸며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인기가 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인터뷰하는 장면을 아주 급하게 촬영하고 넘어가며, 더 이상 촬영진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보데인은 방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보데인의 죽음

2018년 6월 8일, 보데인은 프랑스의 한 호텔 방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먼저 떠나야 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며 남아 있을 것이다.

[이지 라이프 투데이=이지나 기자]